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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넷플릭스

트랜스아틀란틱 줄거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신작 추천, 넷플릭스의 새로운 시대극 트랜스아틀란틱, Transatlantic저널리스트인 베리언 프라이(Varian Fry)와 미국인이자 상속녀인 메리 제인 골드(Mary Jayne Gold)가 함께 설립한 긴급 구조 위원회(Emergency Rescue Committee, ERC)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계 2차 대전 중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치를 피하도록 도움을 준 이 위원회는 정부의 지원 없이 설립되었다. 히틀러 정권 아래의 독일에서 프랑스로 이주하는 난민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ERC는 그들을 위한 안전한 통로를 찾기로 결정했다. 베리언은 Splendide Hotel에서 반 나치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국가를 떠나는데 필요한 출국 비자를 받을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특히나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다. 크리테이터 중 한 명인 안나(Anna Winger)의 부모님은 실제로 베리언 프라이를 도왔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관련이 있다. 게다가 촬영 둘째 주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되어 프로젝트에 대한 시급함과 강한 목적의식을 느꼈고 모든 사실들이 더욱 가슴 아팠다고 전했다. 
 

 

실존 인물들의 서사

메리 제인 골드 Mary Jayne Gold - 길리안 제이콥스 Gillian Jocobs 
상속녀인 메리 제인 골드는 파리에 살다가 독일군이 침공하기 시작했을 때 마르세유로 이사했다. 베리언을 만나 긴급 구조 위원회에 합류했다. 위원회에서 자신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없었다면 작전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애주의자였던 그녀는 미국, 시카고로 돌아와 주부의 삶을 살 것을 바라셨지만 그녀는 원치 않았다.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가 모든 미국 시민에게 프랑스를 떠날 것을 경고했을 때에도 그녀는 프랑스에 머물렀고 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후 난민을 지원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개인 비행기를 프랑스군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녀가 1941년에 프랑스를 떠나도록 강요받았을 당시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활동하는 영국 정보 요원들에게 정보를 몰래 전달하기도 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새로 구성된 국제 구조 위원회에서 일했으며 범죄 심리학을 전공하여 심리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베리언 프라이 Varian Fry - 코리 마이클 스미스 Cory Michael Smith 

ERC를 이끄는 베리언은 자신의 역할에 매우 진지하게 임했고 항상 절제된 삶 속에서 실제로 가능한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위치에 처한 이들을 도우려는 그의 열정과 예술에 대한 종중이 그의 원동력이었다. 목숨을 걸고 다양한 배경과 국적을 가진 인도주의자 팀을 구성한 그는 경찰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위협을 느꼈지만 난민들이 국가를 떠날 수 있도록 지칠 줄 모르고 일했고 심지어 서류 없이 스페인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법을 어겼다. 전쟁이 끝난 지 오랜 후인 1864년 ERC와 IRA를 합병하여 IRC(International Relief Association)를 만들었다. 전쟁 속에서 받았던 고통 때문에 그는 정신질환을 앓다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94년 Yad Vashem Holocaust Memorial에 의해 사후 '국가의 의인'으로 지명되었고 기념식에서 미국 국무장관 Warren Christophers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베리언에 대한 처우에 대해 사과했다. 

 

내 인생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한 적이 없었다.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기쁨만이 있었다.
출처:  Getty Image / google


알버트 홀슈만 Albert Hisrchman - 루카스 잉글랜더 Lucas Englander 

알버트는 유대인-독일 인도주의자이자 반 나치 운동가였다. 1915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당 파벌에 합류하기 전에 나치당에 반대하는 정치 단체에서 일했다. 또한 반유태인법이 그를 파리로 피난하도록 떠밀기 전에 무솔리니 독재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위해 이탈리아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그는 나치가 침공했을 때 자신이 프랑스계 미국인이라는 문서를 위조했다. 마르세유에서 베리언을 만나 ERC에서 베리언을 도와 난민 대피를 도왔다. 그의 위조 서류는 그를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지켜주었지만 결국 경찰에 의해 수배되었다. 1941년 6월 피레네 산맥을 넘어 결국 리스본으로 도망친 다음 배를 타고 뉴욕으로 향했다. 미국에 도착한 후 그는 록펠러 재단 장학금을 받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 육군 정보 부서에서 2년 정도 복무했다. 그는 Princeton University의 유명한 학자이자 교수가 되었다. 

 

출처: transatlanticperspective.org / netflix

 

드라마 제작의 영감은 실화와 소설에서

드라마와 실제 사건 모두 메리와 베리언은 철학자인 Hannah Arendt, 화가인 Max Ernst, 독일 소설가인 Heinrich Mann과 같은 저명한 유럽 인물들과 함께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을 박해하는 나치로부터 사람들을 미국으로 탈출하는 것을 도왔다. 
 
트랜스아틀랜틱의 드라마 제작의 첫 영감은 실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지만 디테일한 스토리는 주로 Julie Orringer의 2019년 역사 소설 'The Flight Portfolio'에서 영감을 받았다. 소설 역시 베리언과 긴급 구조위원회의 활동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베리언만이 유일한 실존 인물이고 나머지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화된 인물이다. 
 

netflix



드라마가 제외한 실제 이야기

드라마 트랜스아틀란틱은 프랑스 남부의 난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베리언과 ERC가 어떻게 관여했는지, 베리언이 프랑스에 도착하기 전에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들은 생략되어 있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 후 베리언은 외국 특파원으로 베를린을 방문했고 히틀러 정권 하에서 사람들이 처한 처우에 너무 충격을 받아 미국으로 돌아온 뒤 200명 이상의 저명한 미국인들을 모아 긴급 구조 위원회인 ERC를 설립했다. 
 
또한 드라마는 베리언과 ERC에 관련된 사람들이 정부 지원이 충분하지 않았는지에 초점을 맞추지만 ERC가 영부인인 엘레너 루스벨트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위원회가 설립된 후 영부인은 여러 지식인들에게 긴급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베리언은 프랑스에 3주 정도만 머물기로 계획했었지만 결국 1년을 머물게 되었다. 
 
드라마와 소설에서는 베리언이 동성애자인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가 동성애자인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들은 없었다. 베리언의 아들은 아버지가 동성애자이라고 믿지만 이 사실이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소설과 드라마에서 다루어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rescue.org

드라마에서 바뀐 내용

드라마와 실화의 차이점은 미국 총영사는 그라함 패터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장군 휴 풀러턴 (Hugh S. Fullerton)이라고 한다. 실제로 풀러턴은 프랑스 경찰과 함께 일했고 베리언에게 프랑스를 떠나라고 자주 조언했다고 한다. 또한 베리언은 관광비자를 취득하여 두 명의 난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했지만 현실에서는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어 스페인 국경으로 호송되었다. 부영사인 해리는 베리언이 난민을 위해서 관광 비자를 받는 것을 돕는 것만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로 Hiram Bingham IV는 그 이상을 수행했으며 작가 Lion Feuchtwanger와 같이 난민을 그의 집에 숨겨주었다.

메리 제인 골드의 역할은 드라마에서 보다 실제로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드라마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는 메리 제인 골드와 다른 사람들만이 불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사람들을 구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베리언도 필요한 모든 수단을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드라마에서 리사가 사용한 경로는 리사와 그녀의 남편 한스가 베리언을 도왔던 산을 가로질렀던 실제 경로였다. 베리언이 그의 친구이자 연인이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우연이 그 집을 찾은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베리언은 그 빌라를 렌트했다고 한다. 
 

IRC 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의 탄생 배경

1933년 7월 나치당이 유럽에 본부를 둔 국제 구호 협회의 활동을 중단시키자 단체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지원을 위해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난민이자 저명한 물리학자인 그는 뉴욕에서 51명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구성된 위원회를 소집하고 나치 정권에 의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은 국제 구호 협회의 미국 지부를 설립하도록 설득했다. 
 
1942년에 국제 구호 협회는 불과 몇 년 전에 베이언 프라이가 공동 설립한 긴급 구조 위원회와 합병하여 국제 구조 위원회(간단히 국제 구호 및 구조 위원회라고 함)를 구성했다. 90년 동안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했다. 여전히 위기에 저한 전 세계 40개국에서 난민들의 정착 과정을 지원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베리언 프라이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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